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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킬힐을 신고 달려

2016.07.11

밀알복지재단은 지난 4월, 장애인의 달을 맞아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접수했는데요.
접수된 사연 중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선희씨의 '킬힐을 신고 달려'를 소개합니다.
 

<킬힐을 신고 달려>
박선희
 
 

5년 전의 일이다. 하루 종일 누워서 살아가야하는 와상의 뇌병변 장애1급의 아들을 둔 나는 여자들의 유행이 된 킬힐을 한 켤레 샀었다. 

물론 외출이라곤 장애 아이를 대리고 병원을 가기위해서 휠체어를 끌고 다녀야하는 일밖에는 없었던 터라 그 킬힐을 신을 일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픈 이후로 집에서 은둔생활을 해야 하는 나에게는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심의 대리만족 같은 상징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먼지가 쌓이도록 신발장에 진열만 해 놓고 잊어버렸던 킬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킬을 신으며 가슴 벅차게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된 기적 같은 날이 내게 찾아왔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한다.

그날도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맞이했었다. 누워있는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또 석션기를 사용해 가래를 빼주는 일을 하며 지치고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누워서 지내는 아이는 가래를 달고 살았던 터라 곤히 잠드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아이가 가래가 끓지 않고 편하게 낮잠을 자는 것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나는 자연스레 티비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여느 주부들이라면 드라마 한두 개는 고정적으로 봤을 테지만 일상이 피곤에 지쳐 잠들기 바쁜 내게는 여의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장애인의 날 특집 단막극이었다. 시각장애인의 관한 스토리로 기억한다. 그 내용은 슬픈 내용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장애를 가졌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청년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였을까!...나는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리 없이 두 볼에 주르륵 흐르던 눈물이 어느새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한 나…….
 

그때부터는 눈물샘이 고장이나 난 것처럼 정신없이 울었던 것 같다. 아마 그때가 처음이지 않았나싶다. 아이가 장애아가 되고난 후 엄마인 내가 버티고 견뎌야 아이가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참았던 나는 이유도 모른 채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동안 참아내느라 힘들었던 내 마음이 그 드라마의 어떤 장면을 보면서 툭 터져버린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자고 있던 아이가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다. 아마도 엄마의 울음소리 때문에 놀라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보다 더 놀란 건 바로 엄마인 나였다. 실은 우리아이는 말을 할 줄 모른다. 백일이후에 갑작스런 고열과 경기로 인해 뇌세포가60퍼센트가 죽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아이다. 

그래서 처음엔 절룩거리면서라도 걷기를 바랐지만 목조차 가누질 못한 채 누워서 살게 되었다. 그런 아이는 앞을 보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진단에도 한쪽 눈으로 엄마를 알아보고 말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에도 ‘아우’라는 소리로라도 겨우겨우 엄마와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울다니……. 아니 울 수 있다니... 놀랍고 신기했다. 
 

사실 그때까지 아이가 우는 걸 본 일이 없었다. 늘 무표정한 얼굴에 눈만 깜빡거리고 방안 천장만 바라보던 아이. 동요를 불러주고 말을 걸어 봐도 멀뚱멀뚱한 눈빛만 보내던 아이. 그런 아이가 울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랄 일인가!!!...처음엔 가슴 밑바닥에 있는 슬픔과 좌절, 그리고 고통이 터져 나오는 비명과도 같았던 눈물이 울지 못하던 아이가 울기시작하면서 엄마인 내게 기쁨의 눈물이 되어 아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더 울었던 것 같다.

그날 밤 퇴근해 돌아온 남편에게 이 같은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아이의 감정에 대해 남편과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장애 아이를 둔 가정이라면 다 공감하겠지만 밖에서 일하는 남편도 아픈 아이를 돌보는 엄마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라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크다보니 힘들다는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마치 힘들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가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아슬아슬한 위기감을 묵직한 침묵으로 대신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가정도 그러했던 것이다. 낮에 있었던 아이와의 한바탕 눈물바람 덕분에 오히려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던 내 심정을 남편에게 솔직하게 털어 놓으며 그 동안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하나를 이야기 했다. 

아이가 울지 않았던 것, 그리고 웃지 않았던 건 어쩌면 뇌가 소멸된 아이에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인 내가 웃지도 울지도 않고 살았던 것 때문일 수도 있을 거라는 진실…….

사실, 장애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려 아픈 아이 앞에서 울지 않으려 눈물을 참았던 것이 오히려 내 얼굴에서 웃음마저 사라지게 했었던 것이다. 

나는 아픈 아이를 둔 엄마는 웃을 자격도 없는 죄인이라 자책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로인해 내 아이에게 웃음을 빼앗았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픈 아이에게 희망이 돼 주어야할 엄마가 오히려 아이에게 못할 짓을 했구나! 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자책의 눈물이 흘렀다. 그때, 남편이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자신도 몇 번이나 울고 싶었던 것을 참고 살아왔는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그날 밤 남편과 나는 아이가 장애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장애아를 키우는 개인적인 아픔을 허심탄회 하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우리부부는 맘속의 무거운 짐들을 하나둘 벗어버리듯 간혹은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가 간혹은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가를 반복하며 장애 아이를 키우느라 애쓰고 수고한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시간을 가졌다. 그날이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아이를 보는 일이 마냥 고되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종이에는 ‘한국방송작가협회교육원’에서 드라마작가지망생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초등학교때부터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나를 배려한 남편의 제안이었다. 외출이 쉽지 않은 내겐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집요강을 자세하게 알아본 남편이 일주일에 딱 한번 그것도 딱2시간 강의만 들으면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웃음을 찾아주려면 엄마인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오후2시에 시작하는 강의를 듣고 와서 아이의 저녁을 먹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에 기쁜 나머지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이젠 죽은 사람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살아있기에 꿈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은 내가 이래도 될는지…….아픈 아이를 두고 외출을 해도 되는 건지…….그 사이에 아이가 잘못되는 건 아닌지…….아무튼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지만 그래도 미친 듯이 좋아 날뛰는 내 심장은 쿵쾅거리기를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나의 아슬아슬한 외출이 시작 된 첫날……. 한국방송작가협회교육원생 면접을 보러가기 위해 먼지가 잔뜩 묻어있던 킬힐을 꺼내 깨끗하게 닦아 신었다. 한껏 높이 올라간 내 키에 절로 웃음이 났다. 여자들이 왜 킬힐을 유행시켰는지 짐작이 갔다. 
 

난 아픈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킬힐을 신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넘어지고 무릎이 까졌지만 면접장으로 가기위해 일어나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교육을 듣고 오는 날이면 외출복도 갈아입지 못한 채 아이의 기저귀를 살피고 서둘러 저녁을 해 먹이는등 몸은 고되고 바빴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내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결국 시놉시스가 뭔지도 모르던 평범한 주부였던 나는 대본을 써서 점수를 받아서 통과해야하는 교육과정을 기초반, 연수반, 그리고 전문반(45기)까지 모두 수료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하루 종일 집에서만 생활해야하는 장애아를 둔 엄마들을 위한 가슴 따듯한 드라마를 쓰겠다는 꿈을 갖고 활동보조인을 쓰는 낮 시간을 활용해 작품을 쓰며 드라마와 시나리오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하는 등, 작가로써 등단할 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 사이 우리아이는 여전히 “엄마”라는 간단한 말조차 하지 못하지만 하루라도 뽀통령(유아 애니메이션 뽀로로)을 안보면 짜증을 내며 울어버리고, 퇴근해 돌아온 아빠가 뽀뽀를 해주면 기뻐하는 괴성의 소리를 지르고, 키우는 강아지가 핥아주면 침 때문에 찜찜한지 인상을 쓰는 등 나름의 감정표현들을 잘하며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다.



나는 불량한 엄마일지 모른다. 하루 종일 장애 아이를 케어 하느라 고생하는 다른 엄마들에 비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꿈을 실현해 나가고 그로인해 행복해진 나의 마음이 우리아이에게 웃음과 울음 그리고 여러 감정들을 느끼게 했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더 이상 킬힐을 신지 않는다. 유행이 지나서가 아니다. 이젠 죄인이라 자책하며 세상에 나가기를 두려워하던 그 옛날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끝내 드라마작가가 되지 못 한다 할지라도 절망스럽지 않다. 이미 그 꿈으로 인해 내 아이에게 행복한 엄마의 미소를 보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난 맘속으로 희망을 외친다. 
“킬힐을 신고 달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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