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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방글라데시로 떠난 환경관리기사, 25년 후 교장이 되어 돌아오다

2014.08.26

방글라데시로 떠난 환경관리기사,
25년 후 교장이 되어 돌아오다

 
○ 1989년 방글라데시로 떠난 수질관리사 이계혁씨,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물해 주고 싶어 빈민촌에서 교육지원사업 시작해
○ 청소부부터 아동, 청소년까지 배움의 욕구가 있는 누구든지 교육 진행 해 25년 후 2개의 학교를 설립
○ 하루 하루 살아가는 빈민촌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으며 더 나은 미래 상상하게 만들어 희망 주고자 노력해
○ 글을 모르고 산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모아서 기숙사 건립해 교육 진행하려 하지만, 기숙사 건립 비용은 턱 없이 부족해…
돈암동 태극당. 추운 겨울, 두꺼운 외투 속의 아내는 아름다웠다. 그는 빵집에서 처음 만난 그녀에게 물었다.
“저는 고생할 수밖에 없는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같이 갈 마음이 있습니까?”
 
누군가 도울 사람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의해 방글라데시로 떠난지 25년. 큰 딸은 22개월, 둘째는 이제 막 4개월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어린 아이들에 대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가 과감하게 방글라데시로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빚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누군가의 값진 희생으로 당신이 교육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본인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살면서 받은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이계혁 교장(밀알복지재단 Grace J. School교장, 선교사)
 
한국에서 환경관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던 그는 1989년 수질관리사로서 방글라데시를 방문했다. 수도 다카 지역은 당시 80년대 말 공해와 물의 오염도가 심하고 배수시설이 잘 설치되지 않아 홍수도 잦았다. 오염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이질과 피부병, 위장 관련 질환을 많이 앓고 있었다. 이계혁교장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위해 물을 정수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큰 항아리 두 개에 모레, 자갈, 코코넛을 태워서 만든 숯을 넣어 항아리정수기를 만들기도 했다. 수질개선을 위해 일한지 1년. 수질개선이 국가적으로 나서야 개선될 수 있는 광범위한 분야이고, 인식이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인지라 홀로 수질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한계를 느꼈고, 수질개선보다도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이 아니다. 사람이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그 도구로써는 교육 밖에 없다’
1년이 지난 후에야 그들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방글라데시의 교육을 위해 일하고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생을 교육하여 양육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교육지는 북쪽 경계에 위치한 쿠리그람(Kurigram)지역이었다. 농업 국가이기 때문에 농업발전을 위한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카(방글라데시의 수도)에서 빈민촌인 밀뿔 지역 아이들에게 교육이 필요함을 느끼고, 1992년 월드 라이프 스쿨(World Life School)을 세워 교육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밀뿔에 위치한 빈민촌의 사람들은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동냥을 하거나 땅콩을 팔고, 심부름 값을 받아서 한 끼를 해결했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극심한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부모들의 마음과 방글라데시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물하고 싶던 이계혁 교장의 마음이 맞닿아 빈민촌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학교를 통해 본인이 배울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에서 온 이계혁 교장은 빈민촌 문맹률 퇴치를 위해 현지어인 벵골어를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청소부,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배움의 욕구가 있는 누구에게든지 학교의 문은 열려 있었다. 그리고 기본적인 생활교육도 함께 병행되었다. 단추가 떨어진 아이의 단추를 달아주고,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손을 씻는 규칙 등 질병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교육도 병행되었다.
 
처음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오늘’만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너의 꿈은 무엇이냐’, ‘커서 어떻게 살고 싶냐’ 등을 묻기 시작했다. 미래에 대해 고민할 수 없었던 빈민촌의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꿈이 수 십번 바뀌었지만 이계혁 교장은 오히려 즐겁기만 했다.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물하는 것이 가장 값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끼니를 거르지 않기 위해 걱정하고, 하루를 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빈민촌의 아이들에게 미래와 꿈을 이야기함으로써 더 나은 삶으로 안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공부하는 학생들의 미래는 분명히 발전된 방향 일 것이라고 확신했으니까요.”
 
유치원부터 가르치기 시작해 대학교까지 간 아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는 더 많은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산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해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가지뿔 지역으로 이동해 그레이스 제이 스쿨(Grace J. School)를 건립하고, 현재는 3층짜리 기숙사까지 건립하고 있다.
기숙사에서 지내며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될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표정이 밝아지던 그는 요즘 또 다른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수도인 다카에서 운영하던 월드 라이프 스쿨의 경우에는 고액의 렌트비 때문에 어려움이 있어 가지뿔 지역으로 이동해 왔지만 3층까지 기숙사를 건립할 3,000만원이 부족한 것.
 
편안한 한국의 삶을 마다하고 방글라데시까지 떠나 그들에게 미래를 선물하겠다며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그 당시의 선택이 후회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나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내가 마음에 드는 곳을 가겠다고 결정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고르기 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후회도 없습니다.”
 
대답을 마친 그는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덧붙였다.
 
“당신이 가고 싶은 곳도 좋지만,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 인생길 이라고 조언해 주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전과 지금의 삶보다 더 가치롭게 될 것입니다.”
 
밀알복지재단은 사랑과 봉사, 섬김과 나눔의 기독교정신으로 1993년 설립되어 국내 장애인, 노인, 지역복지 등을 위한 45개 산하시설과 4개 지부를 운영하고 있으며, 해외 21개국에서 특수학교 운영, 빈곤아동지원, 이동진료 등 국제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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