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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뉴스] ‘일상 속의 장애인’ 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연재-④

2015.06.22

‘일상 속의 장애인’ 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연재-④

 

가작 ‘자전거 기계’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자 ‘일상 속의 장애인’이라는 주제로 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스토리텔링 공모전은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장애인 친구로 지내기’ 등 장애 또는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공모전에는 총 50편의 작품이 모집됐으며 재단은 2주간 총 3차에 걸쳐 심사를 진행해 최우수상 1명, 우수상 2명, 가작 1명, 총 4명을 선정했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네 번째는 가작 ‘자전거 기계’다.

자전거 기계
김승협


나는 중학교 3학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갑자기 아버지가 나에게 ‘속옷과 양말... 그리고 와이셔츠를 챙기고 대학병원 응급실으로 와라’라는 말만 남겼다.

그렇게 나는 부랴부랴 3일치되는 옷과 양말, 속옷을 챙겨서 영문도 모르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닐 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응급실에 들어갔지만 이미 눈은 한 곳을 응시하기 시작했고 눈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차분하게 오전 11시쯤 교통사고가 났다고 이야기했다. 아침엔 분명히 깨끗한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한쪽 눈은 부어올라 눈을 뜨기 힘들어 했고, 왼쪽 뺨엔 스크래치가 있었다.

그것보다 더 심했던 건 오른쪽 다리는 십자인대가 끊어진 것은 둘째 치고 혈관이나 이런 것들이 손상이 많이 되어있다고 의사가 전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오른쪽 다리만 3차례이상 수술을 해야 하고... 못 걸을 수도 있다는 판명을 내렸다.

병실에 들어가자 아버지는 교통사고 낸 사람과 합의금 문제로 인해 언성을 높아졌고, 어머니는 나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어머니의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개인병원으로 옮겼다. 물론 장기간 입원과 수술비 때문이기도 했다.

옮긴 병실은 어머니가 끼니를 거르지 않기 위해 급식소 옆이었는데 급식사 아주머니는 오른쪽다리에 보조기를 끼운 사람이었다.

오른쪽 다리에 보조기를 끼운 급식사 아주머니를 본 후 우리 어머니의 다리를 한 번 본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 그 급식사 아주머니의 음식을 받아들자 어머니는 입만 적시고 그만 드셨고, 나는 그 식판을 들고 급식사 아주머니에게 주었다.

그런데 ‘보니께 나처럼 오른쪽 다리가 안좋턴디. 어쩌다 그렇게 됐는감?’하며 이야기를 하자 당황하며 대답했고 못 걸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씩 웃던 급식사 아주머니는 자전거운동을 권했다. 그 이유는 조만간 수술을 하게 될 것이고 수술한 후 재활활동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특히 자전거 운동은 다리를 굽혔다가 폈다를 하며 둥글게 돌리는 것이 제일 좋은 재활운동이라고 이야기했다.

다시 수술 날짜가 잡혔고 5시간 30분이라고 전하던 수술이 장기간 수술로 변하였고 아버지도 점점 헐크로 변해가고 있었다.

수술이 7시간이 지나자 아버지는 고함이 오가기 시작하고 7시간 30분이 지나자 고이 잠든 어머니의 모습이 나오셨다.

그리고 재활활동시작이라는 선고와 함께 어머니는 수술 한 달 후 비명을 내지르는 재활활동이 시작되었다.

특히 재활활동의 핵심은 오른쪽 다리가 몇도까지 펴지는가에 대한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의 인대를 연결해 놓은 거라서 재활활동을 얼마나 하는가에 따라 판명된다며... 그때 문뜩 자전거 운동이 생각이 나서 이야기를 했다.

급식사 아주머니는 자전거운동에 대해 꺼내려고 하는 동시 자신의 쉼터에 있는 자전거기계를 들고 가라고 하셨다.

아버지와 나는 자전거기계를 병실에다 놓았다. 그리고 급식사 아주머니는 우리병실로 들어와서 자전거 운동의 요령을 보여줬다.

그리고 어머니의 차례가 되었다. 어머니의 폐달은 힘차게 굴러가지 않고 비명소리만 힘차게 나왔다.

하지만 급식사 아주머니는 ‘자기처럼 되지 않으려면 하루에 30분씩 꼭해야한다.’며 우리에게 설득했다.

한 달이 지나자 자전거 페달이 한 바퀴가 돌아가자 우리는 환호를 했다.

두 달 후엔 세 바퀴 세 달 후엔 다섯 바퀴... 누구에겐 쉽게 한 바퀴 돌리지만 어머니에겐 30분에 6바퀴를 돌린다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우리는 급식사 아주머니에게 족발을 함께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급식사 아주머니도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남편 분은 운전하다가 돌아가셨고 급식사 아주머니는 사고 난 파편에 깔려 오른쪽 다리는 못쓰게 되었다. 우리보다 더 심했던 사고였단다.

지금 걸을 수 있는 것도 다 자전거운동 덕분이라고... 그리고 첫 날 내가 식판을 들고 급식사 아주머니에게 주었던 모습이 잊을 수 없었단다.

어머니는 급식사 아주머니와 함께 재활활동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나자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화장실도 혼자 갔다 오시기 시작했으며, 급식소까지 혼자 걸어가 점심과 저녁도 알아서 드셨다.

6개월 지나자 느리지만 계단도 오르고 내려가고 하실 수 있게 되었다. 7개월이 지나고 집으로의 외출도 가능해졌고, 9개월이 지나자 퇴원소속을 밟기 시작했으며, 10개월이 되자 우리는 집으로 갈 수 있었다.

퇴원을 하고 우리는 급식사 아주머니는 계약만료가 되어 울산이 아닌 부산으로 이사를 하셨다.

전화번호는 변경이 되었고, 찾을 방법이 없었다. 아주머니 방엔 자전거 운동기계만 남아 있었는데...

그 것도 아주머니 것이 아니라 병원 것 이었다. 우리는 자전거 운동기계를 15만원에 주고 집으로 들고 왔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자 빨래 옷걸이로 변하게 되었고 녹이 슬어갔다. 몇 년이 지나고 이사를 포항을 하게 될 때 빨래 속에서 나온 자전거 기계를 보며 아득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원문 보러 가기 ▶ http://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14&NewsCode=00142015061710155227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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