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우수상 - 여기 장애인 있다 2017.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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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장애인 있다
- 주분남
언젠가 물리치료를 받으려고 병원 대기실에서 넋 놓고 기다릴 때의 일이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눈길이 가고 집중하게 되었다.
엄마는 환자복 입은 두 아이를 휠체어에 앉히고 걸리고 하면서 화장실을 가나보다.
내심 어쩌다 한꺼번에 둘이나 입원하는 일이 생겼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돌연 작은아이가 소리친다.
"엄마, 여기 장애인 있어! 여기 장애인 있다고! 이쪽으로 와 봐!"
엄마가 알아들을 때 까지 손가락질을 하며 대여섯 번은 외쳐대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멋 적어 하면서 혀를 찬다.
그곳에 있었을 장애인은 누구였을까?
귀가 들리는 장애인이었다면 아무리 어린애의 말이라 해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큰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옳았을까?
한참 동안 혼란한 마음이 뒤섞이다 해답이 나왔다.
휠체어를 탄 오빠가 가려고 하는 장애인용 화장실이 그곳에 있다고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이었다.
외양으로 표시 나는 장애인을 보고 어린아이가 취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왜 마음이 언짢았을까?
나에게도 장애인 아들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었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나의 아들은 자폐아, 정신지체, 발달장애, 지적장애 그런 유형의 장애인이다.
네 살 때 자폐 판정을 받고 자폐치료실, 조기교실, 초중고, 전공과 까지 일반학교는 다녀보지 못했다.
지금은 나이 스물다섯이고 다행히도 규칙적인 것을 잊지 않는 덕분에 보호작업장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퇴근하고 있다.
아이를 믿지도 못하고, 할 수 있다고 용기도 주지 못하는 과잉보호의 엄마였지만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어느 날 문득 아들을 바라보니 저 만큼이라도 커 주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도 가끔 아들을 잃어버리는 꿈을 꾸고는 꿈이어서 다행이라고 큰 숨을 쉬곤 한다.
지적장애인을 사회에 노출시키는 것이 어쩌면 날마다 모험일지도 모르지만 나름대로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는 것 같다.
아들이 밖에서 어떠한 피해를 입어도 대처하지 못할 것에 걱정이 많지만 오히려 아들로 인해 피해 아닌 피해를 겪어야만 했을 분들도 계실 것이다.
엄마의 걱정에 앞서 사회에서 더러 참아 주고, 더러 이해해 주고 보듬어 주어서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성장해 가는 모습도 보여 주고 있다.
아들이 갖고 있는 좋지 않은 습성들을 고쳐주려 해도 가르치는데 한계를 느끼면서 나이도 들어가고 그리고 엄마도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진다.
할 수 있을 때 까지 계속해서 가르치면 언젠가는 배워질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이 즐겁지 않다면 고통을 견디며 꼭 배워야 한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극복보다는 아들의 장애를 이해하고, 아이의 특성에 내가 맞추어 살면서 때로는 힘들어도 마음이 많이 편안해져 가고 있다. 그렇게 보여 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자식이 장애인데 사는 것이 어떻게 편하다 할 수 있을까?
가슴이 터지는데 어디까지 이해해 주어야 하는 것일까?
"엄마니까 그래야 해?"
"엄마니까 다 받아주고 평생 책임에 울어야 하는 거야?" 아무데나 대고 마구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다.
울어서 울어서 고쳐질 수 있다면 태산이라도 무너뜨리도록 울어 보겠다.
장애인이라는 것, 더구나 지적장애라는 것이 참으로 마음이 순수해서 예쁠 때도 많은데 내 아들이 그런 장애인이라고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장애 자식으로 태어나 제 스스로의 꿈은 가져 보지도 못하고 대부분 타의에 의한 이끌림으로 살아가자면 그 또한 편한 삶은 아닐 것이다.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엄마의 소망은 어떠한 기로에 섰을 때 정말 올바른 선택을 해서
아들이 행복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끝까지 책임져 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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