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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가작 - 도대체 누가 장애인이야

2018.02.02

“도대체 누가 장애인이야!” (어느 신규교사의 고뇌)
장덕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모든 별은 특별하다’라는 말과 같이 각양각색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말썽을 부리는 아이부터 시험 성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이, 선생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갖은 노력하는 아이 등 여러 아이들을 보면 왜 학교가 ‘소(小)사회’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다. 지금 이야기할 내용은 작년 우리 학급에서 있었던 일이다. 작년 나는 초등교사 공개채용경쟁시험을 통과하여 경기도의 모 초등학교로 발령 받았다. 드디어 내가 꿈꿔왔던 초등교사로서 첫 발을 내딛었음에 기뻐하며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고 어린 시절 꿈꾸었던 장래희망이 실현되었다.
 
  내가 맡은 학급은 소위 ‘통합학급’으로 일컬어지는 일반 공립학교에서 비장애인 학생과 장애인 아동이 함께 수업을 듣고 생활하는 학급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많은 부담이 되었고 덜컥 겁이 났었다. 초등학교 아이들, 특히나 내가 맡은 4학년 즈음의 아이들은 서로 간의 비슷한 점을 찾아 공감하기를 좋아하며 ‘나와 다름’에 대해서 강력한 거부감을 가지는 발달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우리 학급에 있었던 장애인 친구는 얼굴에 ‘소근육 장애’를 가지고 있어 언어기능이 약화되어 있는 아이였다. 그러다보니 말을 할 때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고 어린 시절부터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 전력이 있어 사회성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는 상태였다. 가명으로 성진이라고 부르겠다.
 
  나는 우리 학급에서 모든 아이들이 자신만의 가치를 깨닫고 살기를 바랐고 특히나 성진이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미소를 되찾고 아이들과 사이좋게 어울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당시 성진이는 학교에 대한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대표적으로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존경과 동시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열심히 써준 자필 편지를 가져가기를 극도로 꺼려했고, 결국 나는 1학기말에 휴지통에서 지금껏 써준 편지꾸러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에 대해서도 같이 놀고 싶지만 주변을 맴돌기만 하고 말을 걸면 일단 당황하는 모습에서 ‘학교’는 과연 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일까? ‘교육’은 과연 이 아이에게 어떤 일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었다.
 
  그 아이를 처음 본 순간이후 신규교사의 열정이 발동했는지 혹은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공명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성진이를 학교를 좋아하도록, 함께하는 삶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으로 바꾸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이 진심으로 성진이를 대하던 혹은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가면 쓴 모습으로 대하던 간 상관하지 않았다. 성진이에게 말 한마디 붙여주는 모습을 바랐고 나를 잘 따르는 소위 모범생 학생들에게도 부탁과 권유를 하였다. 어느 정도 나의 노력이 아이들에게 통했는지 초창기에는 서로 잘 아울려 놀기도 하고 이야기도 걸어주었다. 점점 성진이의 밝아지는 모습을 발견해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아이들은 자신과 ‘다름’을 느끼고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있자 성진이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딜레마에 빠졌다. 성진이를 억지로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게 만들려면 담임교사인 내가 이 아이가 ‘다른’아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오히려 역으로 성진이를 차별하게 만드는 것을 조장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과 시도를 겪으면서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버렸다. 많은 시도와 고민을 할 틈도 없이 어느 덧 2학기의 중순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1년간 지켜왔던 나의 평정심을 한 순간 잃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항상 아이들에게 웃어주려 노력하고 화를 내지 않으려했지만 도저히 참지 못할 일이 터져버린 것이다. 우리 학급에서 1년 내내 가장 어긋난 행동을 많이 하는 학생 한 명이 시끄럽게 다른 친구를 방해하다가 나에게 혼이 났는데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던 성진이는 어눌한 발음으로 “조용히, 조용히”라고 크게 외쳤고, 말하자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꼴이 되었다. 그 아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성진이에게 “지는 장애인 주제에 나대지마!” 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이는 나의 엄청난 분노를 유발했다. 인생에 있어서 그토록 감정조절을 못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소리쳤다.
 
  “도대체 누가 장애인이야? 나와 조금 다른 사람이 장애인이야? 아니면 그런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욕하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만 끼치는 사람이 장애인이야?” 아이들은 모두 놀라서 토끼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이유도 알 수 없지만 인생에서 이렇게 열정적일까 싶을 정도로 초등학교 아이들을 앉혀놓고 대학교 강의와 같이 어려운 수업을 시작했다.
 
  “장애가 영어로 뭔지 아나요? disable과 disability라고 합니다. ‘able은 가능하다’라는 의미, ‘ability는 능력’이라는 의미인데 dis가 붙으면 반대말이 되요. 즉 장애는 어떤 일이 가능하지 않은 상태 혹은 능력이 부족한 상태를 뜻한답니다. 이건 정상인이 아니라는 말이 절대 아니에요! 누구나 다 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여기 앞에 있는 선생님도 ‘굴절 장애’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안경을 끼고 있고 키가 180cm 밖에 되지 않아서 칠판 위를 만지지 못한답니다.”
 
  “선생님은 시력조절이 마음대로 불가능하고, 칠판 꼭대기에 닿기까지 키가 부족합니다. 선생님도 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이고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 모두들 사실 어떤 부분에 있어서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장애가 있으면 어떻게 해주면 될까요? 바로 그를 보조해주는 도움이 있으면 된답니다. 시력이 좋지 않으면 선생님처럼 안경이라는 도움을, 다리가 아프면 휠체어라는 도움을 받으면 된다는 거죠. 키가 작아서 칠판 위까지 글씨를 못 쓴다면 칠판을 위 아래로 내릴 수 있는 나사라는 도움을 받으면 되고요.”
 
  “우리 모두는 장애를 가지고 있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마음의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아니 도대체 누가 도움을 주고 싶을까요? 여러분은 누가 진짜 장애인인지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열성적으로 하다 보니 어느 덧 수업 종이 울려버렸다. 우리 학급 아이들을 방과 후에 남겼고 많은 상담을 진행했다. 같은 학교에서 전학 온 두 친구는 한해 전만해도 친하게 지냈었는데 언어장애로 인해 제대로 대꾸하거나 저항하지 못하는 성진이가 올해 들어 활발해지고 말을 많이 하니 지속적으로 괴롭혔던 점들이 하나하나 드러나게 되었다. “지는 장애인 주제에 나대지마!”라는 말은 그냥 한 순간에 나온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나는 두 아이의 담임교사로 6달이 넘는 시간을 지켜보아 왔는데 무엇도 해주지 못했음에 도대체 나는 왜 교육자가 된 것인가 고뇌에 빠져버렸다.
 
  일단 양측 부모님들께 연락을 드리고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저녁에 성진이네로 찾아가 사과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났다. 그 후 성진이 부모님과의 상담을 진행했는데 그 때의 눈물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부모님들은 장애인이 아니라 정상인처럼 보이기 위해 성진이를 지금껏 다그쳤음에 미안함을 느끼시며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각종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를 전전하시며 많은 거절과 상처를 입었다는 치부를 말이다. 장애아동을 교육하려면 특수교사가 있어야 한다며 돈을 내고 다닌다고 해도 수많은 거절을 당하기 일쑤였고, 공립학교에 들어와서도 선생님들의 무관심과 이해부족에 부모님은 눈물을 쏟았고 학교를 불신하였었는데 그래도 올해 정말 감사드린다고 아이가 밝아진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이해해주시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나 역시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
 
  이 나라에는 어떻게 자기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해도 관용도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가장 소명의식 있어야할 교육자들에게도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 받고 상처 받는 삶을 살아야 하느냐고 말이다. 도대체 누가 장애인인지 생각을 해보라고 말이다. 정말 “도대체 누가 장애인인가?”
 
  이 사건을 겪은 후 내 교육철학에 하나의 단단한 기둥을 세웠다. 학교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소외당하고 상처를 받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잘 들어주는 선생님이 되자고, 그들을 편애하자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행복하고 당당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노력하자고 말이다. 어느 신규교사의 고뇌는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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