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좌담회] 함께한 밀알 20년, 가장 낮은 이들과 함께 걸은 헌신의 길 2013.0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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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2011년에 발표한 장애인 실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국 장애인 수는 268만 명 정도다. 인구 1만 명 가운데 561명이 장애인이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이들을 위한 제도나 정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 정부의 지원도 한몫했지만, 앞장서 장애인을 위해 일해 온 단체와 사람들이 있었기에 처우 개선이 가능했다. 밀알복지재단(구 밀알선교단)이 그 중 하나다.
밀알복지재단(홍정길 이사장)이 출현된 밀알선교단(이사장 이동원, 단장 이민우)은 장애인 전도와 복지사업, 그리고 비장애인들을 계몽하겠다는 취지로 1979년 설립됐다. 당시 이름은 한국밀알선교단. 총신대 사상 최초로 시각장애인으로서 교수가 된 이재서 박사가 씨앗을 뿌렸고, 초기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정형석 목사가 나중에 밀알복지재단으로 독립한 다음에는 상임대표가 되어 오늘까지 가꿔 오고 있다. 밀알선교단은 지금도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재서 박사는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을 중심으로 주로 해외에서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는 사단법인 세계밀알연합회의 총재를 맡고 있다. 이사회도 없이 출발한 밀알선교단은 1980년대 초 손봉호 명예교수(서울대)와 홍정길 원로목사(남서울은혜교회, 당시 남서울교회 담임)를 만나면서 장애인 복지사업의 반열에 올랐다. 시민운동은 재정 투명성이 '생명'이라고 생각한 손 교수가 직접 회계장부를 검토했고, 이사회 설립을 제안했다. 그의 바람대로 1988년 이사회가 설립됐고, 1993년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이 세워졌다. 또 홍정길 목사가 시무한 남서울교회와 남서울은혜교회의 지원으로 1997년 특수학교인 밀알학교를 개교했다. 설립 당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주민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법원이 밀알재단의 손을 들어주어서 무사히 완공되었다.
밀알복지재단은 2000년대 들어서 노인복지관과 어린이집 등의 복지사업을 위탁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 15개국에서 17개 복지사업장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는 40여 개 정도의 복지 시설이 있고, 전체 직원이 700여 명에 달할 만큼 대형 복지 재단으로 성장했다. 또한, 장애인 일자리 마련을 위한 굿윌 사업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굿윌 사업은 집에서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기부 받은 다음 장애인들이 수리·보수한 후 일반인들에게 판매하는 구조다. 수익금은 장애인에게 봉급으로 지급한다. 밀알선교단에서 밀알복지재단으로 우뚝 서기까지 역경도 많았다. 초창기 밀알선교단의 장애인 복지사업은 종교 단체라는 이유만으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에 밀알선교단은 사회복지 법인 설립을 위해 1992년 모금 운동을 펼쳤다. 10억 원의 모금액을 목표로 한 모금 운동은 8000만 원에 그치며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산하 시설은 현재 정부로부터 약 230억 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해마다 받고 있다. 후원하는 사람만 해도 7만여 명에 이르며, 방송 모금도 하고 있다. 정 대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난 지는 불과 3~4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20년 전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졌고, 밀알은 생명의 열매가 돼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장애인 복지사업을 반열에 올린 1세대 지도자들이 20주년을 맞아 한자리에 모였다. 1월 15일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홍정길 원로목사(남서울은혜교회), 정형석 밀알재단 상임대표, 그리고 김종희 <뉴스앤조이> 대표가 모여 좌담회를 열었다. 다음은 좌담회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정형석 상임대표(이하 정형석) / 밀알복지재단의 전신인 밀알선교단은 1979년 10월에 창립됐습니다. 창립자는 중도실명자 이재서 단장(현 총신대 사회복지과 교수, 세계밀알연합회 총재)입니다. 밀알은 장애인 전도, 봉사, 계몽 등 세 가지 일을 하는 기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선교단이라는 종교 단체 이름으로는 정부의 보호도 받을 수 없었고, 지원도 받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인을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법인을 만들려면 기본 자산이 필요한데, 1992년부터 1993년 3월까지 모인 기금은 8000만 원에 그쳤습니다. 실패로 끝날 것 같았고, 모두 낙심했습니다. 그런데 1993년 4월경 기부 천사 두 사람이 나타나 감정가 약 9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했습니다. 당시 손봉호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된 민병완 목사님이 서울역 앞에 있는 감정가 7억 원 상당의 5층짜리 빌딩을 기부했고, 남서울교회 교인이었던 의사 윤영곤 선생님이 1993년 감정가 2억 원에 달하는 토지 500평을 기부하였습니다. 윤 선생님은 이후에도 농지 보상금을 밀알학교가 설립될 시 건축헌금으로 기부하였고, 러시아 선교사로 헌신하기 전에는 6억 원 상당의 병원 건물을 추가로 기부하였습니다. 민 목사님은 지금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으며, 윤 선생님은 러시아에서 의료 선교사로 사역해 오다 파킨슨병에 걸려 얼마 전에 은퇴했습니다. 밀알복지재단 출연을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한 지 1년 7개월 만에 약 2000명이 운동에 참여하여 약 9200만 원의 모금액이 모였으며 공시지가 8억 3000만 원(시가 13억) 정도의 부동산을 기부 받았습니다.
김종희 / 밀알이 처음에는 하나였는데 지금은 크게 세 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혼동하기도 합니다. 손봉호 교수(이하 손봉호) / 밀알운동은 한국밀알선교단이 모체입니다. 1979년 설립된 이후에 국내에 많은 지부를 세웠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에도 지부를 조직해 활동했습니다. 1993년에 밀알복지재단이 설립됐고, 1995년에 한국밀알과 미주밀알이 연합해 세계밀알연합회를 만들었습니다. 성격과 역할이 서로 다른 점 때문에 서서히 분리, 운영했습니다. 영역이 다른 선교 사업과 복지사업은 1998년부터 선교단과 복지재단이 분리돼 독립적으로 맡아 오고 있습니다.
김종희 / 손 교수님은 이재서 박사님과 정 대표님을 총신대에서 강의하시면서 알게 되셨지요? 선교단을 직접 창립하신 것은 아니시지요. 정 대표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밀알복지재단 하면 손 교수님과 홍 목사님 두 분이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실질적이고 상징적인데, 이 모든 일이 계획적으로 이뤄진 것인지 아니면 우연의 산물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손봉호 / 1973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보니까 지성인이나 종교 지도자들은 어려운 노동자와 도시 빈민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 누구일까 고민했고, 장애인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교회 교인들을 데리고 장애인 단체를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1980년 안식년을 마치고 오니 이재서 박사님과 정 대표님이 장애인 복지사업을 한다기에 돕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용기를 북돋아 주고, 강의하면서 장애인 복지사업의 중요성을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김종희 / 세 분이 밀알에서 하는 역할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정형석 / 손 교수님은 밀알선교단 2대 이사장과 밀알복지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오랫동안 봉사했습니다. 홍 목사님은 손 교수님의 후임으로 밀알선교단 3대 이사장을, 밀알복지재단 2대 이사장으로 현재 활동 중입니다. 홍정길 목사(이하 홍정길) / 회전문 인사인 셈이죠. (전체 웃음) 정 대표님은 밀알선교단 2대 단장과 밀알복지재단 창립부터 지금까지 상임이사로 있습니다. 손 교수님은 총신대에서 정 목사님의 은사이고, 서울영동교회를 출석하면서 설교를 통하여 양육받았습니다.
김종희 / 정 대표님은 두 분의 교회적·사회적 공신력이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반대로 두 분이 참여해서 볼 때 밀알복지재단의 재정적인 투명성, 사회적인 방향 등에 대해 평가를 한다면 어떤가요? 손봉호 /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고, 사실상 일은 정 대표님과 실무진들이 다 합니다. 우리는 명예직입니다. 우리는 실무진들을 완전히 믿습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만일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재정 투명성부터 공익이사회 설립까지 이런 문화를 일찍이 유지해 왔습니다. 홍정길 / 정 대표님은 정직이 배어 있고, 상대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언제나 상생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대개 정의롭다는 사람의 단점은 내가 정의롭기에 남을 미워하고 무시하기 쉬운데, 정 대표님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잘해 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종희 / 밀알학교는 밀알복지재단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홍 목사님이 계셨던 남서울교회가 통째로 기부를 하면서 밀알복지재단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아무리 장애인들을 섬기겠다고 해도,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과정에 우여곡절은 없었습니까.
홍정길 / 밀알복지재단의 상징인 밀알학교가 세워지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당시 학교 재단을 외부에 맡기자는 의견에 장로 90%가 반대했습니다. 원래 우리 교회는 예배당 외에는 다른 재산을 갖지 않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작은 일은 주님께 순종하고, 큰일은 순종하지 않는 게 모순이지 않느냐'면서 장로들을 설득했고, 결국 손 교수님이 추천한 밀알복지재단에 학교를 맡기게 됐습니다. 밀알학교는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지어졌습니다. 음악홀부터 미술 전시관, 베이커리, 카페가 공존하는 하나의 복합 문화 단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손봉호 / 밀알학교의 설립 과정은 기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애초 지어질 수 없는 건물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감격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구청장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건축법이 개정되지 않았다면 건축할 수 없었습니다. 건축 허가권자가 구청장에서 교육감으로 바뀌어 서울시교육청 건축 허가 1호로 건축 허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물리적으로 반대하자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공사방해중지가처분이라는 법적인 소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송에 이겨서 어렵게 건축을 하였습니다. 건축비 모금도 큰 문제였지만 남서울은혜교회 등의 도움으로 무사히 준공을 했습니다.
김종희 / 법인을 만들어도 자기 식구들끼리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은 공익 이사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흔한데, 솔직히 밀알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홍정길 / 특수학교는 남서울교회가 추진하려 했던 교육 사업이었습니다. 특수교육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공익이사로 이사진을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손봉호 교수님이 밀알과 함께하자고 제안해서, 교회와 재단에 대한 객관적인 공익 이사회를 구성하게 됐습니다. 정신적인 지도를 받기 위해 김범일 가나안농군학교장,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이랜드의 참여를 끌어들이기 위해 방선기 이랜드 사목을 이사로 영입했습니다. 올해부터 사회복지 법인은 외부 추천 이사 즉 공익이사를 재적 1/3 이상 선임하도록 됐습니다. 우리 법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했습니다. 감사도 공인회계사와 세무사로 전문가를 영입했습니다. 이는 객관성이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 것입니다.
김종희 / 남서울은혜교회 주일학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밀알학교에서도 통합 교육이 이뤄지고 있습니까? 밀알학교도 통합 교육을 하는 학교로 시작하려고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통합 교육은 하지 않습니다. 사회 전반적인 인식과 교육 시스템이 통합 교육을 원활히 할 수 있을 만큼 잘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통합적인 활동이 필요하므로 주변 학교와 연계해 등산 활동 같은 특별활동은 가끔 하고 있습니다. 밀알아트센터를 건축하여 운영하므로 가급적 장애 아동과 그 가족들이 세상과 소통하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김종희 / 밀알학교의 좋은 시설, 예술적 가치, 높은 교육의 질, 이러한 것들이 밀알만의 자랑거리가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른 장애인 교육기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변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하십니까. 김종희 / 후원자들은 자기가 낸 후원금이 고스란히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쓰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부 운영비(인건비, 건물 유지비 등)에도 적지 않게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잘 하지 않습니다. 사업 목적 후원금, 일반 운영 후원금, 그것이 아닐 경우 몇 퍼센트가 운영에 쓰이는지 명확하게 구분해서 알려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정형석 / 사회복지 법인의 후원금은 지정 후원금과 비지정 후원금으로 나뉩니다. 지정 후원금은 사업을 지정하여 내기 때문에 15% 정도는 행정비로 사용할 수 있고, 나머지 85%는 반드시 사업비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비지정 후원금은 간접비와 직접비로 나누어지는데, 간접비로 50%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NGO(비정부기구), NPO(비영리기구)를 운영하다 보니 사업비도 있어야 하며, 행정비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점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종희 / 밀알의 현재 과제와 미래 비전은 무엇입니까.
홍정길 / 현재 과제는 장애인 복지의 핵심인 직업재활을 위하여 굿윌 사업을 좀 더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현재 50여 명 정도가 일을 하면서 최저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생애 주기별로 접근하고 있는데, 장애 노인을 위한 공동생활 가정을 확대하고 생활시설을 마련하는 일이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해외 사업도 갑자기 실천하다 보니 좀 더 다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일은 많은데 헌신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도 문제입니다. 미래 비전은 밀알 정신으로 일할 수 있도록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손봉호 / '노블리스 오빌리제(nobless oblige).' 신분이 높은 사람의 도덕적 책임감을 이야기하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 한국도 잘사는 나라가 됐고, 한국교회도 성장했으니, 이에 걸맞은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밀알도 올해에 처음으로 법인 예산이 100억 원이 넘었습니다. 산하 시설까지 합하면 500억 원이 넘습니다. 이제 작은 기관이 아니라 큰 기관이 된 것입니다. 커진 만큼 큰 책임이 따릅니다. 특히 해외 복지사업을 많이 늘려 나갈 것입니다. 식량·의료·교육 등을 지원해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이 확보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정형석 /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해야 합니다. 일자리는 독립생활과 자립생활과 자아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장애인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 직업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하고,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선 고용과 우선 구매 등을 통해 알맞은 일자리를 개발할 것입니다. 좋은 뜻을 가진 기업들과 연계해 장애인, 노인, 다문화 가족 등 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만들 계획입니다. 김종희 / 사역의 범위가 커졌습니다. 대외적인 신뢰도라든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내부 역량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사람도 등용하고, 재교육 등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정형석 / 결국 사람이 문제입니다. 대부분 욕심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밀알 정신은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밀알 정신을 회복하는 영성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변화하고 좋은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서 노력 중입니다.
손봉호 / 장애인 복지사업만 관심을 기울이다가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인명진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자기 교회 교인이 어린이집을 하고 있는데 이사장이 돈을 가져오라고 했답니다. 도저히 못하겠다면서 밀알과 같이 할 수 없겠느냐는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장애인 복지사업만 해야 할지 일반인 사업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결국 복지계의 정화를 위해서 공헌하자는 명목으로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영유아 복지계에 비리가 많았거든요. 노인 복지의 경우도 비슷한 사례가 접수되면서 시작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확대가 됐습니다. 홍정길 / 복지라는 것은 섬김입니다. 신앙적인 뒷받침 없이 사람이 끝까지 정직한 것은 힘이 듭니다. 직장 안에서 섬기는 복지, 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숙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김종희 / 밀알영성센터를 건립한다고 들었는데, 그 취지는 무엇인가요.
정형석 / 밀알의 규모가 커지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타락하는 점도 생길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급여, 더 높은 자리 등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업할 때 장애가 심한 사람을 서비스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애가 약한 사람을 찾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편하잖아요. 만약 이렇게 세월이 지나면 사업은 잘돼도 감동이 없을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 기관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다른 단체와 비슷해질 수도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나 특수교사는 다른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이기에 헌신과 봉사 정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봉사는 섬김입니다. 영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섬김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밀알영성센터는 밀알 영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사람들을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100년을 향하여 김종희 / 밀알재단이 벌써 20년이 되었습니다. 저희 <뉴스앤조이>도 그새 13년이 됐습니다. 전에는 "12년이 어디냐"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외국의 영향력 있는 기관들을 보면,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100년 이상 이어 가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 정도 역사가 있어야 내공이 쌓여서 제 몫을 온전히 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나눈 밀알 20년을 돌이켜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가장 아픈 분들을 위해서 밀알을 통해 많은 사건들을 일으키셨고, 그것이 저희에게 참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 일에 헌신하신 많은 분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을 풍성히 누리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 온전히 100년, 200년 나아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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